지자체, 외국인 근로자 ‘러브콜’

“외국인 없이는 농사도 공장도 어려워”
정부 “2025년 농업근로자 7만9000명 도입”

등록 절차 대행·언어 도우미 배치 등
지자체, 파격적 인센티브 내걸고 구애

기업, 최저임금 부담에 무단이탈 ‘골치’
전문가 “현행 고용허가제도 개선해야”

유학생 ‘학업·취업·정착’ 체계 구축 등
주거·교육·노동권 중장기 로드맵 필요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외국인 일손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습니다.”

 

경남 창녕군의 한 마늘밭. 70대 농민은 허리를 펴며 한숨부터 내쉰다. 전국 최대 양파·마늘 주산지인 이곳은 수확기로 바쁜 시기이지만 들판은 한가하다. 며칠 전까지 함께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100여명이 출입국사무소 단속에 체포돼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최근 창녕군청 앞에서 현실을 외면한 일방적 단속에 항의하며, 계절근로자 확대와 대체 인력 지원을 촉구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전북 김제시 백구면 한 농가에서 포도송이 봉지씌우기를 하고 있다. 전북도 제공

대구 달성산단의 한 제지공장은 직원 5명 중 3명이 외국인이다. 내국인은 힘든 업무를 견디지 못해 40대 이상만 채용하고 있다. 공장 박상민(62) 대표는 17일 “정상 가동에 3명이 더 필요한데 인력을 못 구해 아내와 아들이 기계 앞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구지역 5인 미만 제조업체의 인력 부족은 932명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외국인 근로자 모시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자체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확보는 최대 과제로 부상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외국인 농업 근로자를 7만9000명 도입할 계획이다. 저출생·고령화, 청년 인구 유출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 대응 차원에서 외국인을 지역 공동체 구성원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인력난에 “외국인 없이는 농사 못 지어”

 

지자체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관할 지역으로 데려오기 위해 항공료와 숙소 지원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고 있다.

 

전남도는 항공료·숙박비·보험 지원, 언어 도우미, 기숙사 신축, 생필품 제공 등 통합 지원체계를 갖췄다. 경북 예천군은 라오스 국적 근로자 유치와 등록 절차 대행, 항공료 지원 등을 추진 중이고, 경기 포천시는 지난해 대비 3배 넘는 인력을 캄보디아·라오스에서 들여왔다. 경북 포항시는 과메기 가공업계에 결혼이민자 친인척 중심 단기비자를 활용해 어가당 최대 11명까지 배정했다.

 

전북 군산시 계절근로자들이 서해에서 어패류 채취작업을 하고 있다. 군산시 제공

인천 남동산단처럼 청년층이 기피하는 업종 중심 산업단지에선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공장 가동이 어렵다. 인천상공회의소는 “외국인 인력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만큼 장기 숙련 인력 육성과 정착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저임금 부담, 언어·문화 장벽, 근로자들 무단이탈 등으로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김진수 경상국립대 교수는 “영세업체가 외국인을 배정받기 어려운 현행 고용허가제를 개선해 기숙사 외에도 교통비·식사 제공 등 복지 항목에 가점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업 중심지인 울산에선 HD현대중공업이 우즈베키스탄에 직업훈련센터를 설립해 ‘훈련-취업-정착’ 모델을 시도 중이다. 법무부는 최근 울산과 경남을 조선업 분야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해 인력난 해소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대구·경북의 일부 중소 제조업체는 외국인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한다. 대구의 한 금형업체 대표는 “금형은 5~6년 숙련이 필요한데, 고용허가제 제약 탓에 외국인 숙련공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도 외국 유학생 유치 경쟁 사활

 

지자체들은 외국인 유학생들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 대구, 충북, 전북 등은 전담 사업과 함께 ‘지역특화 비자(F-2-R)’ 등 장기 체류 제도를 운용 중이다.

 

전북 익산시 한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엽채류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전북도 제공

그러나 이들 유학생은 지역 정착보다는 체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2023년 기준 외국인 유학생 중도 탈락률은 평균 7.1%, 일부 지역대는 20%를 넘는다. 언어 장벽과 생활비 마련을 위한 과도한 아르바이트가 주요 원인이다. 대구 한 대학 교수는 “수업의 상당수가 번역기로 이뤄지고, 심화 토론 수업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북 지역 유학생 상당수는 식당, 주점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베트남 유학생은 “등록금보다 월급이 더 중요해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특화 비자’가 취업을 조건으로 정착을 유도하지만,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한계다. 대학들은 ‘학업-취업-정착’이 연결되는 생태계가 없으면 유능한 유학생들도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대구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D-10(구직) 비자 유지 조건이 까다롭다”며 지자체·대학·기업이 협력한 언어·직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 임실군 한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딸기 모종을 이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임실군 제공

◆“전담조직·기반 확충…사회통합 정책을”

 

지자체들은 외국인 주민의 장기 정착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도는 외국인정책과를 신설하고, 각 시군에 통역·민원 인력을 배치했다. 안산시는 외국인지원주택과 국제어린이집 등 통합 행정을 운영 중이다. 전북 고창군은 농업 외국인 기숙사를, 익산시는 외국인 자문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전남도는 ‘이민외국인 종합지원센터’를 열고 한국어 교육·일자리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원도는 조립식 주택 지원과 국제 교류 확대에 나섰다. 광주광역시는 ‘글로벌 포용도시’를 비전으로 인권센터 설치 등 중장기 정책을 시행 중이다. 외국인 인구 비율이 15%에 달한 충북 음성군은 ‘외국인복지센터’ 설립에 나섰다. 이는 단기 노동력 중심 정책으로는 외국인 주민의 정착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산단과 농촌을 중심으로 주거, 교육, 보육 등 공공서비스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요인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자체가 전담조직 없이 일회성 지원에 머무르며, 체류 기한 초과, 마약 등 범죄 연루 사례도 발생해 예방 교육과 사회통합 프로그램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외국인 정책은 단순 노동력 유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착이 전제돼야 하며, 주거·교육·노동권을 포함한 중장기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