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G8 제외는 실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소련의 위세는 대단했다. 미국과 더불어 지구상에 단둘뿐인 초강대국으로서 국제정치를 쥐락펴락했다. 냉전이 공산주의 진영의 패배로 끝나고 1991년에는 소련마저 해체됐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막대한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임이 분명했으나 더는 미국과 동급이 아니었다. 경제력은 더더욱 보잘것없었다. 그런 러시아가 서방을 대표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상임 옵서버 국가로 초청을 받은 이유는 명백했다. 자존심 강한 러시아를 충분히 예우하지 않으면 장차 서방을 위협하는 이른바 ‘악당 국가’로 돌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나치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를 전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에 포함시켜 체면을 살려준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2007년 6월 독일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한 뒤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 초중반 옵서버로 G7 정상회의에 함께한 러시아는 1997년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그에 따라 기존의 G7은 주요 8개국(G8)으로 확대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집권 초기만 해도 러시아의 G8 참여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인정을 받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2000년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G8 정상회의가 열렸다. 푸틴은 일부러 그 직전에 평양을 방문했다. 방북 기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지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푸틴은 G8 회의장에 도착한 직후 외교부 장관을 통해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외신의 이목이 푸틴에 집중됐고, 그는 순식간에 국제 외교 무대의 스타로 부상했다.

 

G8 체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4년 3월 푸틴은 군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름(크림)반도를 강탈했다. 이에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러시아가 G8 정상회의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4년 G8 회의는 원래 러시아 휴양 도시 소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회원국 자격 정지로 G8이 사라지고 과거의 G7로 복귀하며 회의 장소도 벨기에 브뤼셀로 옮겨졌다. 돌이켜보면 푸틴은 러시아의 G8 참여에 회의감을 느낀 듯하다. 다른 7개국과 비교해 경제력이 크게 떨어지는 러시아가 회의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어려웠다. 철저하게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운영되는 유럽연합(EU)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던 영국이 결국 EU 탈퇴(브렉시트) 카드를 꺼내든 것과 흡사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6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여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운데)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는 일정을 단축해 이날 오후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A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G7 정상회의가 개막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를 G8에서 제외한 것은 매우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G7 회원국 가운데 러시아 제명을 앞장서서 촉구한 미국 및 캐나다 옛 정상들을 맹비난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러시아가 G8의 일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 오늘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크라이나 침략을 통해 러시아는 ‘적어도 군사력 측면에선 우리가 여전히 초강대국’이란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신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러시아는 세계 양대 강국 또는 3대 강국의 일원이라면 모를까 주요 8개국 중의 하나, 이른바 ‘원오브뎀’ 지위에는 만족할 수 없는 국가라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