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탄생 100주년 맞아 재조명 받는 대처리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영국 보수당 총리 마거릿 대처(1979∼1990년 재임)가 발전시킨 정치·경제 사상 및 정책들. 특히 국유화된 산업의 민영화, 정부 역할의 제한, 자유 시장, 세금 감면,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개성 및 자기 결정권 존중 등을 뜻한다.” 영어권 국가들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브라태니커 백과사전의 ‘대처리즘’(Thatcherism) 항목에 기술된 내용이다. ‘철의 여인’(Iron Lady)으로 불린 대처 개인의 독특한 스타일도 대처리즘과 불가분의 관계다.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 같은 집념이 대표적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보잘것없는 영국령 섬의 영토 주권을 지키겠다며 군대 동원과 전쟁 선포도 불사한 강렬한 민족주의, 그리고 미국의 ‘반공’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81∼1989년 재임)과 의기투합해 공산주의를 반드시 쳐부숴야 할 ‘악’(惡)으로 여기고 적대시한 도덕적 절대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마거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 ‘대처리즘’이란 정치·경제 사상을 남겨 오늘날까지도 세계 자유 진영 국가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티이미지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집권하기 전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퇴물’ 취급을 받았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일본·독일은 물론 프랑스·이탈리아보다 뒤진 영국을 일컬어 혹자는 ‘쓰러져 가는 노대국(老大國)’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대처 시대가 끝난 뒤 영국은 확실히 달라졌다. 경제력은 이탈리아를 앞질렀고 프랑스도 따라잡은 데 이어 곧 추월에 성공했다. 영연방의 종주국이라는 막대한 자산에 초강대국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에 따른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며 세계 외교 무대에서 영국의 발언권은 더욱 커져만 갔다. 여기에 웨스트엔드 뮤지컬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축구로 대표되는 영국 문화의 소프트파워도 지구촌을 매료시켰다.

 

2013년 4월 대처가 87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 영국 사회는 둘로 갈라졌다. 보수 진영은 위에 소개한 대처의 업적을 강조하며 그의 장례를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와 동급의 국장(國葬)으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대처 정권 시절의 포클랜드 전쟁과 국영기업 민영화, 복지 혜택 축소 등으로 영국인이 겪은 실직 및 생활고를 거론하며 “국장은 가당치도 않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처칠보다는 축소된 준(準)국장으로 결론이 났지만, 대처리즘을 경원시하는 이들은 그마저도 불편해하는 심기를 드러냈다. 정작 우방국과 자유 진영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선 고인을 향한 찬사 및 애도가 쏟아진 점과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오는 13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1979∼1990년 재임)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영국 맨체스터의 보수당 행사장 앞에 대처에 관한 책들이 잔뜩 진열돼 있다. 대처는 1925년 10월 13일 태어나 2013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925년 10월 13일 영국 중부 랭커셔주(州)의 소도시 그랜섬에서 식료품점 딸로 태어난 대처가 오는 13일이면 탄생 100주년이 된다. 요즘 영국에선 보수당 전·현직 정치인과 대처 전기 작가들을 중심으로 고인에 대한 재조명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마침 일본에서 “대처를 존경하고 철의 여인이 되길 꿈꿔왔다”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 의원이  집권 자민당 총재로 뽑혔다. 자민당에 여성 총재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조만간 그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등극할 예정이다. 자신과 비슷한 강성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다카이치를 “큰 지혜와 강인함을 지닌 매우 존경받는 인물”로 규정하며 “일본 국민에게 대단한 소식”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와 다카이치가 1980년대의 레이건·대처 같은 밀월 관계를 구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