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니어 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지역필수의사제 도입, 재정지원 확대 등으로 최근 몇년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지방 공공의료기관들 숨통을 틔워줘야 합니다.”
김영완(69·사진) 충남 서산의료원장은 “비수도권 공공의료기관이 무너지면 지방소멸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전국 공공의료원에 대한 정부의 특단 지원을 촉구했다. 김 원장이 이끌고 있는 서산의료원은 직원 450명 규모의 도립 2차 의료기관으로, 충남 서산·당진·태안 지역의 응급환자 치료와 외래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종합병원이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김 원장은 최근 세계일보와 만나 “전국 공공의료원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돈(경영난)과 의료인력 이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발발하자 정부가 공공의료원을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전국 의료원들은 누적되는 적자를 감수하며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였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정부의 손실 보상이 미미해 일부 의료원에서는 임금 체불이 발생하고 있으며 의료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건넌 서산의료원 처지를 고사성어 ‘토사구팽’(?死狗烹·토끼를 잡으면 사냥개가 쓸모없어져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에 빗대 “코(코로나19)사구팽”이라고 했다. 그는 “서산의료원이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지역 전담병원이 되면서 입원 환자들을 내보내는데 환자들로부터 ‘우리는 길거리에 나가 죽으라는 것이냐’는 항의가 거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때 떠나 보낸 환자들과 심지어 그 가족들까지 의료원으로 발길을 끊었는데, 이에 대한 정부 보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의정갈등 후폭풍에 휩싸인 지방의료원들 처지도 토로했다. 그는 “지방의료원 대부분은 필수 진료과목 전문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공의료 현장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응급의학과와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처럼 지역에 꼭 필요한 진료과의 경우 전문의가 부족한 정도를 넘어 아무리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 자체가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서산·태안지역의 경우 응급 분만을 담당할 산과 의사가 없어 원정 출산들을 하고 있는데, 임신부들의 안전과 편의, 저출생 극복을 위해 서산의료원에 산과 의사 배치가 간절하다는 요청이 쏟아진다.
이는 개별 의료원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개원의, 전공의, 전문의 등 의료인력은 수도권과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지방에서 근무하려는 의사는 갈수록 줄고 있다. 그렇다고 공공의료원이 필요 인력을 모시기 위해 연봉 등에서 수도권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김 원장은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려면 지역 의료활동이 희생이 아닌 합리적 선택이 되도록 만드는 정책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30년간 개원의로 환자들을 치료하다 2018년부터 서산의료원장(3연임)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지역필수의사제와 시니어 의사제, 공공의대 설립 모두 도입 취지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역필수의사제는 의무복무 이후 이탈 가능성과 헌법 위반 논란 등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의료원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국민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병원”이라며 “정부는 지방의료원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반으로 인식해 달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