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해결에 치이고… 민원·고소 ‘이중고’ [심층기획-갈 길 먼 근로감독관제]

(상) '증원'의 명과 암
李 임기 내 1만명으로 증원
신고 사건 업무의 90% 차지
“산재 예방 업무는 소홀해져”

사업주·근로자 모두 상대 특수성 가져
어떤 결과 나와도 한쪽은 불만 불가피
민원인의 감독관 고소 상반기만 28건

빠른 증원에 교육·근무환경 등 후유증
文정부 당시 승진 후폭풍도 해결 안 돼
인력 배치 ‘하석상대’ 모양새 비판도

지자체에 감독권한 부여도 논란 불씨
“민원인이 곧 유권자” 유착 우려 목소리
현장선 “힘든 일 처리만 도맡게 될수도”

“대부업체에서 채권추심원으로 일하는 분들을 데려다 일 시키는 게 낫죠.”

2019년 입직해 올해 7년 차 근로감독관인 이모(43)씨는 자신의 업무를 이렇게 자조했다. 지갑에 전태일 열사 사진을 넣고 다니는 그는 누구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앞장서 지키겠단 꿈이 있었다. 그 꿈은 감독관 업무 시작과 함께 꺾여나갔다. 사업주와 근로자 양측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 특수성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어떤 조사 결과가 나와도 양쪽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순 없었다. 둘 중 한쪽은 늘 불만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이씨는 “근로감독관 한 명이 사업주와 근로자를 동시 상대하는 1대 2 민원 구도라고 보면 된다”며 “업무 난이도나 민원 수위가 높은 데 반해 승진 같은 보상은 적어 기피 직렬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7년 차 근로감독관인 이모(43)씨가 지갑에 넣고 다니는 근로감독관 명패(왼쪽)와 전태일 열사의 증명사진. 이지민 기자

이재명정부가 내놓은 ‘산업재해와의 전쟁’, ‘임금체불 제로’ 구호 아래 현장에서 뛰는 근로감독관들의 어깨가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임기 내에 현재 3000명 수준인 근로감독관을 최대 1만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유례없는 속도전에 우려는 따라붙는다. 문재인정부 당시 5년간 1000명을 늘렸으나 산재나 임금체불은 오히려 늘어났다. 하위 직급만 늘어 ‘승진 적체’ 문제도 부작용으로 생겨났다.

 

‘초짜 감독관’이 대거 생겨나면 균질적인 감독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감독관 업무는 통상 7급 이상이 맡는데 보조 업무를 주로 하던 8, 9급 공무원들에게 해당 업무가 떠넘겨질 수 있단 것이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도 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안을 추진하고자 해 이에 따른 찬반 양론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증원 자체는 전문가들까지 모두 공감하는 사안이다. 근로감독관은 크게 근로기준법 분야를 다루는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다루는 산업안전보건 감독관으로 나뉜다.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근로감독관은 2141명,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은 895명이다. 1인당 처리하는 신고사건은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201건, 30건에 달했다.

 

이씨가 본인을 채권추심원에 빗댄 이유는 임금체불 업무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실 탓이다. 그는 “쥐고 있는 사건 90%가 임금체불”이라면서 “감독 업무 안에는 예방도 포함되는데 상대적으로 예방 업무에 소홀하게 된다”고 했다. 타 지청으로 전출을 앞두고 사건 처리에 속도를 냈지만 여전히 갖고 있는 사건만 25건이라는 그는 많을 때는 58건을 한 번에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늘어나는 사건 속 민원인에게 협박 시달려

 

노동청에 접수되는 신고건수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임금체불 신고 건수는 2022년 15만5424건에서 매해 늘어 지난해 19만4915건에 달했다. 체불액도 지난해 처음 2조원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엔 1조1005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고액을 찍을 전망이다.

 

양도 양이지만 난도가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2019년 직장 내 괴롭힘법 시행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충남 지역에서 근무하는 18년 차 감독관 임모(46)씨는 “10년 전만 해도 임금이나 퇴직금 체불 등 사건이 비교적 단순했는데 괴롭힘 문제가 추가된 이후 쟁점을 따져야 할 부분이 늘어났다”고 했다.

 

민원인으로부터 고소당하는 감독관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실에 따르면 2023년 8월 고용부가 ‘특별민원직원보호반’을 발족한 뒤 민원인의 근로감독관 고소는 올해 6월 말까지 140건에 달한다. 지난 한 해 58건이었고, 올해 상반기 28건을 기록했다.

 

임씨도 2015년 민원인으로부터 ‘직무 유기’로 고소를 당했다. 그는 “당시엔 본부 법률지원도 없을 때여서 혼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며 “‘혐의없음’ 종결이 되긴 했지만 마음고생에 업무에도 지장이 갔다”고 회상했다.

 

2023년 5월엔 부당해고 구제신청 업무 처리 중 민원인에게 고소당한 근로감독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후 그해 8월 고용부는 ‘특별민원직원보호반’을 발족하는 등 대책을 내놨으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감독관에 대한 협박도 일상적이다. 지난해 입직해 업무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된 김모(26)씨는 ‘고용부 감사실에 민원 넣겠다’, ‘시사 프로그램에 제보하겠다’ 등 협박을 당한 일이 최소 12번이라고 했다. 그는 “사건 처리가 지체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식으로 방치하면 어쩌냐’는 말을 듣기 일쑤”라며 “그럴 때면 있던 의욕도 사라진다”고 씁쓸해했다.

◆현장서는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것 아니냐”

 

이 대통령이 연일 산재 예방과 노동자 보호 대책을 주문하면서 현장 업무는 가중되고 있다. 고용부는 올해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의 전국 65개 모든 현장에 대해 불시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에 착수했고, 1일엔 외국인 노동자 집단 임금체불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고(故) 오요안나씨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지상파 2곳·종편 4곳에 대한 기획감독에도 착수했다.

 

고용부는 이 대통령이 긴급 지시한 산재 예방을 위해 산업안전 분야에 먼저 관련 인력을 확충했다. 고용센터 등 비감독 인력 중 산업안전 분야 경험이 있는 직원들이 4일 자로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으로 전보 발령된다. 고용부는 이달 중 300명, 연내 추가로 1000명을 각각 행정안전부 수시직제와 정기직제 개정을 통해 정원 증원에 나선다.

 

현장에서는 증원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급하게 인원을 늘리면 감독관 교육이나 사무실 근무 환경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베테랑 감독관과 초짜 감독관 간 역량 차이도 두드러질 수 있어 후유증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센터 인원이 일부 옮겨가면서 ‘아랫돌 빼 윗돌 괴는’(하석상대·下石上臺) 모양새라는 비판도 있다. 현재 구직급여(실업급여) 지급 등을 담당하는 고용센터 인력도 부족해 센터 직원 1명이 연평균 3000건가량의 접수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4월 고용센터혁신추진단이 자율기구로 설립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용부 관계자는 “산업안전이 고용부 정책 우선순위로 올라간 상황에서 당장 허리층 직원들이 생겨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력 배치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당시 증원 후폭풍으로 남은 승진 문제도 예상된다. 이씨는 “일이 힘들면 승진이라도 잘되는 등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안 되는 기형적 구조”라고 토로했다. 김씨도 “급격하게 인원을 많이 뽑게 되면 승진 시기 등에도 격차가 크게 발생할 수밖에 없어 사기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감독권 지자체로 이양… 유착 어쩌나”

 

이 대통령은 근로감독 권한을 지자체 공무원에게도 부여하는 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안에 대한 노동계 찬반은 갈린다. 이 모델은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할 때도 추진했으나 고용부와 노동계의 반대로 동력을 얻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 모델을 다시 꺼내 들었다.

 

고용부가 지난 정부에서 이 안을 반대한 근거 중 하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다. ILO 협약 제81호에 따르면 근로감독 업무를 중앙 정부에서 주도하도록 정하고 있다. 일례로 그리스의 경우 ILO 권고로 정책을 환원했다. 그리스는 1994년 근로감독업무를 지방에 이양했는데 1998년 정책을 다시 되돌렸다.

 

현재 고용부는 ILO 협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지자체 공무원이 사업장 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2016년 지자체 공무원에게 감독 권한을 일부 이양했는데 ILO는 이 경우 협약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봤다. 중앙단위의 핵심적인 조정과 감독권은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윤효원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산림 분야 내 범죄를 수사하는 산림특사경이 산림청과 지자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임명되듯 근로감독도 충분히 가능하며,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윤 위원은 “근로감독을 고용부가 독점적으로 하는 나라는 굉장히 예외적”이라며 “중앙 정부 주도로 하되 지자체와 협력하는 것이 근로감독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데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현장에서는 예방 및 점검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고 근로감독관은 사건 처리만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씨는 “정말 힘든 일만 감독관에게 몰리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감독의 질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지자체에서는 민원인이 곧 유권자인 탓에 유착 가능성도 제기된다. 임씨는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경우 지자체장이 제재에 소극적일 수 있지 않겠냐”며 “꼭 해야 하는 감독을 못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