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은 군국주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일본의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 탓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의 종전 80주년 메시지 발표는 생략될 것으로 보인다.

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이 신문에 “이시바 총리가 그동안 의욕을 보였던 전후 80년 메시지를 15일에 발표하지 않고 당분간 미루는 방향으로 조율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발표가 없기는 미국의 80주년 ‘V-J 데이’(Victory over Japan Day)인 오는 9월2일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V-J 데이란 1945년 9월2일 도쿄 앞바다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일본 정부 대표가 연합국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 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일본에서 총리 명의의 종전 담화문이 나온 것은 꼭 10년 전인 2015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우리나라(일본)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 왔다”고 말했다. 과거 여러 차례 사과한 만큼 충분하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는 이어 “후대(後代)에까지 사죄를 계속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누구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다”며 “우리 독일인은 나치 시대에 행해진 일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주의깊고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 점과 대조적이다. 이에 한국, 중국 등에선 ‘과거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가 너무 안이하다’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시바 총리는 아베 등 역대 자민당 지도부에 비해 온건한 정치인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앞서 여러 차례 전향적 인식을 드러냈다. 올해 종전 80주년을 맞아 메시지를 내려고 한 것도 그 일환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잇단 선거 패배로 퇴진론까지 불거지는 상황이 이시바 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0월 실시된 중의원(하원) 총선거에서 집권 자민당(196석)은 연립 여당인 공명당(24석)과 합쳐도 220석으로, 전체 465석의 과반(233석 이상)에 크게 못 미쳤다. 이후 최근 실시된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자민당·공명당이 야권에 패하며 총 248석 중 220석으로 역시 과반 의석 유지에 실패했다. 자민당이 중의원은 물론 참의원에서도 소수당으로 전락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에 자민당 실세 정치인들 사이에선 ‘이시바 총리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서 완고한 입장을 취해 온 강성 보수 진영이 반(反)이시바 총리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아사히신문은 “정권 내에서는 총리가 메시지를 내면 총리 반대 세력이 이를 구실 삼아 퇴진 요구를 강화해 정권 존속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견해가 확산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시바 총리도 지금은 역사 문제와 관계된 메시지를 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일단은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