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술 넘어 표준 수출… 글로벌 AI 규칙 제정자役 노린다 [세계는 지금]

기술패권 지각변동 예고

사용설명서 포함된 기술질서 제안
“다자협력 참여” 개방·포용성 강조
美 ‘폐쇄·독점’ 비판하며 바짝 추격

中 위성항법·자연재해대응 시스템
글로벌 사우스서 실질적 대안 자리
“중국형 표준 생태계 복제” 평가도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은 더 이상 물건만 파는 나라가 아니다. 인공지능(AI)부터 전기차, 위성, 농업, 재난 대응에 이르기까지 기술을 판매하는 데서 나아가 그 기술을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규범과 시스템까지 함께 내놓고 있다. 기술 수출에서 표준 수출로의 이행을 통해 중국은 이제 ‘사용설명서가 포함된 기술 질서’를 세계에 제안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특히 AI, 전기차, 감시기술 등 중국이 선도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기술 수출에서 제도 수출로의 전환’이라는 평가를 내놓으며 중국이 자국 기술의 국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세계는 이제 중국산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설계한 운영의 틀까지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농업, 우주, 재난 대응처럼 당장 주목받지 않지만 각국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에서도 중국식 표준 수출은 확산하고 있다.

7월26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를 찾은 방문객들이 로봇시연을 관람하고 있다. 상하이=신화연합뉴스(AFP연합뉴스)

◆“세계 AI 주도권 잡겠다” 포석

 

중국 주도로 26일 상하이에서 개막한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및 AI 글로벌 거버넌스 고위급 회의’에서는 ‘AI 글로벌 거버넌스 행동계획’이 발표됐다.

 

13개 항목으로 이뤄진 행동계획에는 각국 정부·국제기구·기업·연구소·학교·민간기구·개인의 AI 참여를 독려하고, 기술 장벽을 낮추자는 등의 제안이 담겼다. 산업·소비·의료·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AI를 적용하는 ‘인공지능 플러스(+)’와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 국가들에 대한 AI 발전 지원 등 중국 색채가 짙은 AI 글로벌 정책과 다자 참여, 유엔 틀 내에서의 발전 등 최근 중국이 강조하는 국제질서 구호도 포함됐다. 미국과의 글로벌 전략 경쟁 속에 AI 분야를 중점 육성해온 중국이 이제 AI 추격자에서 AI 글로벌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규칙 제정자 지위를 노리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에 세계AI협력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AI 분야에서 미국을 자본·기술적으로 추격하는 동시에 거버넌스 분야의 국제적 주도권을 우선 차지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폐쇄적·독점적인 미국과 개방적·포용적인 중국을 대조한 리창 중국 총리의 이번 WAIC 개막사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리 총리는 “중국은 혁신 자원과 활력이 충분하고, 적극적으로 오픈소스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며 “현재 글로벌 AI 거버넌스에는 전반적으로 여전히 파편화 상태가 나타나고 있고, 특히 각국이 통제 철학과 제도 규칙 등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넓은 공감대를 가진 AI 글로벌 거버넌스 프레임과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우리 또한 다자 협력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전쟁 등 쟁점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를 모은 경험이 있는 만큼 AI 영역에서도 거버넌스 체제 선점 시도가 효과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시도는 AI 실력 면에서 미·중 양강 구도를 구축했다는 자신감에 근거를 둔 것을 보인다. 아직 미국을 앞지르기에는 이르지만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학기술정보연구소와 베이징대는 최근 공동으로 발표한 ‘글로벌 AI 혁신지수 보고 2025’에서 미국이 총점 77.97점으로 세계 선두를, 중국이 58.01점으로 2위를 지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주·농업·재난대응 분야도 부각

 

우주 분야에서도 중국식 표준 수출은 뚜렷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시스템이다. 베이더우는 중국이 독자 개발한 위성위치정보시스템으로, 현재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100여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2023년부터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등이 베이더우를 군·민간 표준 시스템으로 채택했고,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농업, 물류, 재난 대응에 베이더우가 기본 좌표계로 활용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GPS에 대한 실질적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더해 우주 표준화 외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2년엔 ‘국제우주과학기술표준화연맹’(INCSS)을 주도적으로 설립해 위성통신, 우주물체 감시, 기지국 통합기술 등에 대한 표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방 중심의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유럽우주국(ESA) 체계와는 별개로, 중국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우주 인프라 체계를 구축해가며 새로운 우주 질서를 만들고 있다. 중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에 자국 위성 수신 안테나와 데이터 센터를 설치해 실시간 통신 및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사족보행 로봇을 체험해 보는 모습. 상하이=신화연합뉴스(AFP연합뉴스)

중국 농업농촌부는 202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공동으로 개최한 포럼에서 자체 개발한 농업 사물인터넷(IoT) 기술, 빅데이터 기반 병해충 예측 시스템, 드론 및 자동화 재배 설비를 공개하며 국제협력을 제안했다. 이어 2023년 FAO는 중국이 제안한 디지털 농업의 데이터 공유 표준과 지능형 재배 매뉴얼을 일부 시범국가에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디지털 농업 시범구를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지로 확대 중이다. 샤오미, 화웨이 같은 민간 기업은 IoT 센서와 위성 기반 분석시스템을 수출하고, 중국농업과학원은 중국식 작물 생장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재배 가이드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단순한 장비 제공을 넘어 데이터 형식, 해석 기준, 운영 알고리즘을 패키지로 묶어 수출한다. 말라위, 에티오피아 등은 이미 중국과 공동 개발한 농업 표준 시스템을 자국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자연재해 대응에서도 중국은 기술과 표준을 함께 수출한다.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 당시 중국은 구조대와 함께 지진 감지 드론, 구조로봇, 모바일 병원 시스템을 현장에 투입했다. 이 장비들은 모두 중국이 자체 개발한 것으로 구조 프로토콜과 통신체계, 현장 대응 매뉴얼이 통합된 ‘중국형 대응모델’로 소개됐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후 일부 장비를 정식 도입했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재난 대응 훈련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개발도상국 간 재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체계 구축도 추진 중이다. 중국 CGTN에 따르면 2023년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국가들 사이에 ‘자연재해 방재 및 응급관리 협력 메커니즘’이 공식 출범했다. 구조 훈련, 기술 교류, 긴급 구조 플랫폼 구축 등 14개의 구체적 협력 과제를 추진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AI 기반 위험 예측 모델, 감염병 시뮬레이션 시스템 등도 포함돼 있어 단순한 구조 협력을 넘어 위험관리의 디지털 전환까지 포괄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중국산 재난대응 소프트웨어와 운영 프로토콜이 국제 기준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기술 이전 넘어 규범 확산으로

 

이처럼 중국은 특정 기술의 수출에 그치지 않고 기술의 작동 방식, 운영 규칙, 해석의 틀까지 함께 패키지로 제안하며 사실상의 국제표준을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이 주도했던 이른바 ‘룰 세팅(rule setting)’ 과정에 중국이 점차 새로운 방식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 각지에 ‘중국형 표준 생태계’가 복제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개방적 표준과 폐쇄적 운용이라는 이중구조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실제로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가성비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제기준 제정의 주도권은 기술력만이 아니라 규칙을 누가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행보는 세계 기술 패권 구도의 지형을 바꾸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