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수출 계약이 확정됐다.
방위사업청과 폴란드 정부는 2일 현대로템이 만드는 K-2 전차의 폴란드 2차 수출 계약 협상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정식 계약 체결은 안규백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공식 취임한 직후인 이달 말쯤 이뤄질 전망이다.

양측은 계약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군형 K-2GF 117대와 폴란드 요구사항이 반영된 K-2PL 63대를 8조8000억 원에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2022년 7월 한국과 K-2 1000대와 K-9 자주포 670여대,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도입하는 총괄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8월 K-2GF 180대를 4조5000억 원을 들여 구매하는 1차 계약을 체결했다. 3년 만에 이뤄진 2차 계약은 물량은 비슷하지만 계약 액수가 크게 뛰었다.
현대로템은 올해까지 1차 계약 물량을 모두 납품하고, 내년에는 2차 계약 물량 중 30대를 폴란드에 인도할 예정이다.
폴란드 수출은 K방산이 한국군이 쓰는 장비를 그대로 팔던 과거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을 겨냥한 장비를 개발해 판매하고,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는 수출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K-2보다 우수할 K-2PL
2차 계약의 가장 큰 특징은 K-2PL을 제작한다는 점이다. 한국군이 쓰는 K-2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지만, 폴란드 요구가 반영된 K-2PL의 세부 성능은 K-2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다.
가장 큰 특징은 능동파괴장치(APS)다. K-2는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탐지, 연막탄을 발사하고 회피 기동을 해서 피격 위험을 낮추는 소프트킬(Soft kill)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 전차들이 대전차미사일과 드론에 잇따라 피격되자, 대전차미사일 등을 요격하는 하드킬(Hard kill)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라파엘의 트로피 체계를 비롯한 APS 장착이 차세대 전차의 필수 요소가 됐다.
K-2PL에도 APS가 장착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도입돼 기술적으로 검증된 APS인 트로프 체계의 요격탄을 사용한다. 요격탄 발사기는 전차 포탑 후방의 좌·우측에 설치된다.
미사일 탐지용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통제체계 등은 국내 업체가 만든다. 포탑에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를 추가 탑재해서 대전차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한다.

장갑도 K-2 전차보다 강화된다. 대전차미사일과 드론, 로켓포는 APS로 저지할 수 있지만, 전차포탄은 장갑으로 저지해야 한다.
폴란드의 최대 위협인 러시아군 전차는 125㎜ 활강포로 무장하고 있다. 전차의 생존성을 높이려면 장갑구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APS와 장갑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도 전차의 경량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루마니아를 비롯해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지역은 교통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도 기계화부대 이동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로서 습지가 많다. 도로나 교량, 공병장비 등이 노후화되어 있어 전투중량이 지나치게 무거운 전차는 운용이 쉽지 않다.
폴란드가 도입한 미국산 M1A2C 전차 전투중량은 65t, 독일산 레오파르트2PL 전차 전투중량은 60t이다. M1A2C는 지나치게 무거운 전투중량으로 폴란드 내에서 운용에 제약이 있다.

반면 K-2는 55t으로서 상대적으로 가벼워 폴란드 환경에 적합하다.
K-2PL은 K-2와 유사한 수준의 전투중량을 유지하면서 장비 추가 등에 의한 성능 향상을 진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제한된 체적과 무게 속에서 K-2보다 우수한 방호력을 지닌 장갑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계약에선 보조차량 80대 구매도 포함됐다. 다수의 전차를 원활하게 작전적으로 운용하려면, 구난·교량 등의 보조차량이 필수다. 폴란드와의 K-2 1차 계약에선 전차만 포함됐으나, 이번엔 보조차량 도입이 추가됐다.
한국군은 K-1 전차 차대를 활용한 구난전차, 교량전차, 장애물개척전차를 운용중이다. 국내에선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K-1 개발 당시 미국과의 계약으로 K-1 계열은 해외 판매에 제약이 있다.
따라서 K-2를 활용한 구난전차와 교량전차, 장애물개척전차를 만들어 폴란드에 납품할 것으로 보인다.

◆맞춤형 수출 전략 인정받아
이번 수출은 구매국의 수요에 부응하는 맞춤형 무기를 제안하면서, 국내 방산업계가 지속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과거 K방산은 한국군이 쓰던 무기를 해외에 판매해왔다. 한국군과 동일한 형태의 무기를 수출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상태에서 판매를 하므로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반면 구매국 특성이나 요구성능과 맞지 않을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수출형 무기들이 개발됐지만, 선진국 방산업체에 밀려 적은 수량이 판매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호주 장갑차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수출용으로 개발한 레드벡이 채택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레드백에 탑재되는 핵심 구성품 중 대부분이 이스라엘 등에서 수입한 것이지만, 해외의 잠재적 시장을 노리고 개발한 K방산의 지상 무기도 외국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했다.
폴란드 전차 사업에서도 동유럽의 특성에 맞는 K-2PL을 제시, 수주에 성공했다. 폴란드산 장비와 시스템을 탑재하고, K-2PL에 쓰일 신기술을 개발해서 적용하는 작업을 통해 K-2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전차를 폴란드에 납품하게 됐다.
현지 조립생산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K-2PL의 현지 생산은 폴란드 PGZ 그룹 산하 부마르 라베디가 맡는다. 1951년에 설립된 부마르 라베디는 기갑장비를 생산·수리하는 업체다. 냉전 시절 T-34를 비롯한 구소련 전차를 생산했고, 냉전 이후엔 레오파르트2 전차를 개조했다.
하지만 전차 생산을 위한 발주가 줄어들면서 기술 기반 유지가 어려워졌다. 부마르 라베디로선 K-2PL 생산을 통해 기업 경영과 매출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다.
현대로템 입장에서도 현지화를 통한 시장 및 매출 확대를 꾀할 수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역내 방위산업 진흥을 위해 EU에서 만든 무기를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프랑스는 미국산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대체 기종으로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공동의향서(JDI)를 맺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금까지처럼 한국에서 생산한 완제품을 유럽에 판매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폴란드에서 K-2PL을 생산하면, EU 역내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유럽에서 전차 수요가 있는 국가에 대한 판매도 한층 쉬워진다.
K-9 자주포를 구매한 루마니아는 재정 문제로 단기간 내 신형 전차 구매는 어렵지만, K-2를 살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폴란드와 인접한 슬로바키아도 K-2PL 구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과 가까운 폴란드에서 K-2PL을 생산한다면, 한국에서 후속군수지원을 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욱 크다. K-9이 노르웨이에서 루마니아에 이르는 동유럽 지역에 ‘K-9 벨트’를 구축한 것과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K-2PL에 쓰일 핵심 장비를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이 지속적으로 공급, 장기간에 걸친 수익을 창출할 길도 열리게 된다.
산업적 측면과 일자리 유지 등을 위해서라도 폴란드 정부는 K-2PL을 꾸준히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폴란드의 기술수준을 감안하면, 새로이 탑재될 장갑과 포신 및 엔진 등 핵심 장비는 한국이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첨단 무기 개발과 생산을 지속하려면 핵심 부품이나 장비를 만드는 중견·중소기업에 꾸준히 일감이 제공되어야 한다.
한국군은 K-2 성능개량과 더불어 차세대 전차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전차 관련 중견·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산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일감을 보장, 이들이 방위산업에서 철수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K-2PL의 폴란드 생산은 전차 관련 중견·중소기업이 장비와 부품을 지속적으로 납품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매출과 재투자를 가능하게 할 전망이다.
폴란드에 대한 K-2 2차 수출계약은 향후 추가 계약의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지속적인 수출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토대로 방산수출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K방산이 한국 산업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