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충남 공주시 대한상공회의소 충남인력개발원에서 비전문취업(E-9) 특화훈련 수업을 받고 있던 네팔인 타망 크리티(23)씨는 교육을 받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4월22일 입국한 그와의 대화는 번역 애플리케이션 없이는 불가능했다. 경기 화성시의 어묵 공장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탓에 그는 아직 별다른 안전사고를 겪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입국 전 교육 기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며 “더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 취업 인구 대비 산업재해 사망률이 3배 이상 높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학 교육 등도 내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 규모는 지난해 5월 기준 101만명으로 국내 전체 취업자(2857만6000명)의 3.5%이다. 고용노동부 발표에서 지난해 외국인 산재 사망자는 102명으로 집계돼 전체 산재 사망자(2098명)의 12.3%였다. 업무 도중 사고로 사망할 확률을 따지면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더 높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발생한 아리셀 화재 참사는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가 산재에 더 취약한 현실을 드러냈다. 동시에 정부의 안전 교육이 형식적이고 부실하단 지적도 잇따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후속 조치로 외국인 근로자 산업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한 이유다. 아리셀을 계기로 E-9 근로자들이 입국 전 받는 안전보건교육은 1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났다. 입국 뒤 원하는 사업장에 한해 무료로 지원하는 E-9 특화훈련 규모를 확대한 것도 마찬가지 취지에서다.
◆지난해 예산 소진 22% 그쳐
E-9 특화훈련은 외국 인력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2023년 조선업에 한정해 시범 시행됐다. 지난해부터는 제조업, 광업 등으로 업종을 확대했다. 기간은 3주 이상이며 커리큘럼은 한국어, 산업안전, 직무교육으로 구성됐다. 참여 외국인은 훈련 일체 비용을 포함해 숙식도 제공받는다. 예산도 매해 늘어나 올해는 지난해(144억원) 대비 50% 늘어난 216억원이 편성됐다.
전액 무료 훈련인데도 현장 수요는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부가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E-9 특화훈련 참여 외국인 근로자는 1264명으로 목표(4000명)에 크게 미달했다. 예산 소진율도 22%에 그쳤다.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1분기까지 참여 근로자는 343명, 예산 소진율은 4.3%에 불과하다. 이대로면 올해도 목표(6000명) 달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고용부는 특화훈련에 참여를 망설이는 곳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E-9 근로자를 채용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즉시 투입할 인력이 필요해 채용한 건데 교육 기간에 발생하는 인력 공백을 감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 안산의 제조 중소기업 지엔텍에서 외국인 채용을 담당하는 유강욱 인사관리부장은 한 달 가까운 기간이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 부장은 “외국인 근로자들 비자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다음 사람을 뽑곤 해서 그 사이에도 공백이 있기 마련”이라며 “거기에 3주 추가 공백이 생긴다면 반길 사업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엔텍에는 현재 베트남 출신 외국인 근로자 10명이 근무 중이다.

◆“사업주·근로자 교육 뒤엔 만족”
특화훈련을 받은 사업체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충남인력개발원에서 지난달 12일부터 3주간 특화훈련에 참여한 E-9 근로자 8명은 4개 사업장에서 근무 중인데 4개 사업장 중 3개 업체가 지난해와 올해 훈련에 참여한 곳이다. 개발원이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훈련을 완료한 9개국 47명에게 만족도 설문을 한 결과 만족도 만점(10점) 비율은 각각 93%, 68%에 달했다. 권혁대 충남인력개발원장은 “사업장과 참여 근로자 모두 높은 만족도를 표하고 있다”며 “한번 참여한 사업주들이 또 훈련생을 보낸다는 게 그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3일 충남인력개발원에서는 E-9 근로자 8명이 특화훈련 2일 차에 돌입해 산업안전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각각 네팔, 인도네시아, 태국 국적의 근로자들은 작업장에서 기계 오작동이 났을 때, 감전 사고가 났을 때 등의 조치 요령을 익혔다. 개발원 소속 김학식 메카트로닉스학과 교수는 “앞서 기계 사고에서는 빨리 전원부터 껐지만 감전사고는 다르다”며 설명에 한창이었다.
훈련에 참여한 외국인들은 한목소리로 만족과 기대감을 표했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던 인도네시아 국적의 와유디(24)씨는 “안전 문제가 돈보다 중요하다고 느낀다”며 교육의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지난해 12월4일 입국해 대전에 있는 가구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반년간 사고는 날카로운 물건에 긁힌 정도여서 크게는 없었지만 언제든 안전사고가 있을 수 있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결국 특화훈련 홍보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산업인력공단 ‘E-9 근로자 입국 전후 취업교육 내실화 및 개편방안 연구용역’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 E-9 근로자를 고용한 949개 기업 중 ‘특화훈련을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26.3%에 불과했다. 농축산 분야는 18.9%로 더 낮았다. 연구진은 “정부 정책에서 홍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짚었다.

◆“한국어 교육 내실화 병행해야”
중소기업계에서는 한국어 교육이 안전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더 위험할 수 있는 이유도 한국어가 서툴러서이기 때문이다. 유 부장은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에서 제공하는 E-9 근로자 후보에 체격 조건 등과 함께 한국어 수준이 상·중·하로 명시되지만 ‘상’이라고 명시된 근로자를 뽑아도 ‘하’와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바로 입국한 근로자들은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사업장에서 안전 교육을 하려 해도 한국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서도 ‘추가로 필요한 교육 내용’을 설문한 결과 11개 응답 중 ‘일상생활 한국어 회화’와 ‘직무 관련 한국어 회화’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해당 교육에 대해 ‘매우 필요함’ 응답은 각각 31.3%, 29.1%에 달했다.
유 부장은 현재와 같이 사업장이 다른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하는 집체교육은 실효성이 낮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마다 근무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작업장에서 별도 교육이 또 필요하다”고 했다.
김태윤 아리셀 중대재해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도 비슷한 입장이다. 김 대표는 “산업안전교육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으로 되는 게 아니다”라며 “사업장에서 특정 유해물질이 있기 때문에 현장 상황에 맞게 교육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최근 발간한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 예방 강화 방안’에서도 유사한 제언이 나왔다. 연구진은 “안전보건교육에 관해 제조업과 건설업 모두 입국 시 교육에 관해 질의한 결과 너무 오래돼 기억이 없거나 입국 시 교육 대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는 것으로 응답했다”며 “구체적인 직무 특성을 반영한 교육 및 적절한 시기에 교육 진행이 필요하다고 해 맞춤형·주기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