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함께 만든 인도네시아, 이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박수찬의 軍]

동남아시아 방위산업 시장을 놓고 글로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군사력에 맞서 동남아 각국은 군사력 증강에 한창이다.

튀르키예가 개발 중인 5세대 전투기 칸. TAI 제공

태국과 필리핀 등은 영공을 지키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는데 필수적인 전투기 도입을 결정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튀르키예가 개발 중인 5세대 전투기 칸(Kaan) 도입을 결정했다. 한국산 KF-21 공동개발을 추진하면서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를 사고, 미국산 F-15EX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칸 전투기 48대를 사겠다는 뜻을 밝혔다.

 

KF-21 개발 분담금 조달 문제와 기술유출로 한국과 오랜 기간 갈등을 빚었던 인도네시아가 경쟁 기종을 통 크게 사들인 셈이다. KT-1 훈련기 수출을 계기로 확보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을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가 선택한 칸 전투기

 

인도네시아측은 11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 디펜스(Indo defense) 2025 전시회에서 튀르키예 항공우주산업(TAI)과 칸 전투기 48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튀르키예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방산 수출 계약이다.

 

TAI는 홈페이지를 통해 “48대는 120개월 이내에 인도될 예정이며 튀르키예에서 생산된 엔진이 장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항공 분야의 인도네시아 기술 이전도 포함된다. 인도네시아의 국내 역량을 칸 전투기 생산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튀르키예가 개발 중인 5세대 전투기 칸이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TAI 제공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번 계약은 튀르키예와 인도네시아 양국에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인도네시아군에 앙카 무인기를 판매했던 튀르키예는 칸 전투기 수출 계약을 맺음으로써 동남아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확대할 기반을 마련했다.

 

칸 전투기는 튀르키예가 노후화한 F-16 전투기를 대체하고자 개발하는 신형 전투기다.

 

스텔스 기능과 모듈형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및 추적 시스템을 포함한 센서 융합 기술도 갖추고 있다. 엔진은 미국산 F110을 쓰지만 2030년까지 튀르키예산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인공지능(AI)과 드론 통합 운용 등 차세대 공중전 시스템의 핵심 기능도 미래에 탑재될 예정이다. 2024년 2월 첫 비행에 성공했으며, 현재는 시제기 생산이 진행중이다. 튀르키예는 2028년까지 자국 공군에 20대를 인도할 계획이다.

 

이번 계약은 양측에 상당한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 튀르키예는 서방 기술 규격을 활용하면서도 서방측 무기에 자주 동반되는 수출 통제 등의 조건은 없다.

 

서방 및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서방 기술로 만든 무기 수요가 있는 인도네시아는 비동맹 기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무기를 확보할 수 있다.

 

첨단 전투기는 세계 각국에서 전략무기로 분류한다. 그런 무기를 거래한다는 것은 판매국과 구매국이 전략적 관계를 맺고 가깝게 지낸다는 의미다.

 

이슬람교를 믿는 양국이 전투기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양자간 전략적 관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산업협력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효과가 있다.

튀르키예가 개발 중인 5세대 전투기 칸이 활주로에 있다. TAI 제공

해당 거래가 실질적 효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인도네시아의 재정 문제 때문이다.

 

이번 계약 규모는 100억 달러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국방비(90억 달러)보다 높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내년부터 무상 급식 부분 시행을 진행한다. 공공 주택 건설과 무료 건강 검진 등 지난해 10월 출범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정부의 핵심 공약이 시행될 예정이라 재정 악화 우려가 크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2024년 카타르 공군이 쓰던 프랑스산 미라지 2000 전투기 12대를 8억 달러를 들여 구매하려고 했으나 재정 문제로 취소한 바 있다.

 

예전부터 지속됐던 재정 문제를 프라보워 정부가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칸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결정이 미국산 F-35나 중국산 J-10 대신 다른 선택을 고민하는 국가들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려는 국가는 인도네시아처럼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칸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21 경쟁자 늘어나

 

동남아에선 신형 전투기 구매를 통한 공군력 증강 조짐이 뚜렷하다.

 

태국은 최근 스웨덴 사브의 그리펜 E/F 전투기 12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필리핀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FA-50 경공격기 12대를 추가 구매했다.

 

태국과 필리핀은 기존에 진출한 시장지배자(사브, KAI)가 최신 기술이 반영된 기종을 제시,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은 사례다. 이같은 방식은 오랜 기간 전투기를 지속적으로 판매하면서 지원서비스까지 제공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KT-1과 T-50 훈련기를 처음 구매한 국가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에 훈련기를 판매함으로써 태국, 필리핀 등 해외 시장 진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도네시아에서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려면 훈련기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군용기를 제시·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KF-21 공동개발을 진행하면서 KF-21의 인도네시아형인 IF-X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공동개발 추진과정에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11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 디펜스(Indo defense) 2025 전시회에서 인도네시아 공군용 라팔 전투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AP통신

인도네시아는 2016년 1월 KF-21 개발비의 20%인 약 1조7000억원(이후 1조6000억 원으로 감액)을 2026년 6월까지 부담하고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분담금을 6000억 원으로 줄이는 대신 기술 이전도 그만큼 덜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KF-21 제작 업체인 KAI에 파견됐던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기술 유출을 시도하다가 수사 당국에 적발되면서 최종 합의가 지연됐다.

 

그러다 11∼12일 인도 디펜스에서 한국 방위사업청과 인도네시아 측이 공동개발 기본합의서 개정안에 서명하면서 분담은 6000억 원으로 확정됐고, 인도네시아는 2000억 원만 추가로 납부하게 됐다.

 

기술이전 범위는 KF-21 체계개발이 완료되면 협의할 예정이다.

 

KAI와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PTDI는 KF-21의 인도네이사형인 IF-X 양산 이행을 위한 생산과 마케팅 등에서 전방위적 협력을 구체화·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경쟁자들은 한국보다 앞서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지만 방사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과 스리얀또 인도네시아 국방부 예비전력총국장이 공동개발 기본합의서(Project Agreement) 개정안에 서명 후 기념촬영 중이다. 방위사업청 제공

프랑스 닷소는 라팔 전투기를, 유럽 에어버스는 A400M 수송기를 수출했다. 미국(F-15EX), 러시아(SU-35), 중국(J-10등)도 판매 가능성이 거론되어왔다. 여기에 튀르키예까지 참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자들의 잇따른 출현은 한국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라팔은 성능이 검증됐고, 튀르키예는 이슬람 국가이면서 서방 기술 규격을 따르는 국가다. 중국은 가성비를 앞세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산 잠수함 도입을 백지화하고 프랑스산 잠수함 구매를 결정한 전례가 있다. 합의가 있다고 해도 정치·경제·외교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과의 협력은 언제든 뒤로 미룰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KF-21 성능 검증·강화와 시장 유지를 위한 포트폴리오 재구축이 시급하다.

 

KF-21은 현재 공중전 능력 외에는 성능 측면에서 검증된 것이 부족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됐는데, 현재의 KF-21은 공중전만 장거리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11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 디펜스(Indo defense) 2025 전시회에서 튀르키예산 바이락타르 무인기가 전시되어 있다. 로이터

장거리 공대지 능력은 KF-21 블록2에서 운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KF-21 블록2 개발이 완료되어 생산이 진행될 때까지 기다리기는 어렵다. 그동안 해외 경쟁자들이 개발·생산·전력화한 기종들이 잠재 시장을 일찌감치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수출용으로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공대함미사일 등을 장착하는 능력을 하루빨리 개발해서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KF-21 성능 조기 강화와 더불어 훈련기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작업도 필수다. KAI는 이미 관련 사업을 위한 행보를 진행중이다.

 

KT-1은 지난 3월 6400만 달러 규모의 기체 수명 연장 사업 계약을 맺은 바 있다. KAI는 KT-1 12대를 추가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등훈련기의 경우 인도네시아는 노후화하는 영국산 호크 훈련기를 교체하는 수요가 있다. 

 

조종사 훈련과 제한적인 공중작전을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체코산 L-39NG와 중국산 FTC-2000, 이탈리아산 M346과 국산 FA-50이 거론된다. KAI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예산반영 등을 감안해 사업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