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대니엘 오프리/ 고기탁 옮김/ 사람의집/ 2만5000원
1984년 하버드대 연구자들은 1년간 뉴욕주에 있는 51개 병원에서 무작위로 3만121개의 차트를 선별했다. 이를 통해 치료과정에서 의도되지 않은 상해로 규정한 이상 반응 횟수, 이른바 ‘의료 사고’를 확인했다.
그 결과 입원 치료의 3.7%가 의료 상해로 드러났고, 그중 14%는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뉴욕주의 모든 거주자에게 적용하면 1984년 한 해에만 병원 치료의 결과로 10만건에 육박하는 의료 상해가 발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는 1만3451명의 사망자와 2550건의 영구 장애도 포함됐다. 저자 중 한 명인 소아외과 의사 루치안 리프는 이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외과용 메스를 내려놓고 관련 연구에 남은 경력을 바쳤다. 이후 그는 1994년 의료 행위를 전반적으로 더 안전하게 만드는 목표로 재설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주요 화두는 의료 실수가 개인의 실패뿐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잘못된 약을 투약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간호사의 투약 실수는 너무 많은 환자를 담당한 데 따른 것이거나, 잦은 비상호출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약 이름들이 비슷하게 들리거나, 약 위치가 병동마다 달랐거나, 하다못해 형광등 아래 라벨이 너무 반짝거리는 게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한 명의 간호사 징계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철저히 조사해서 무엇이 간호사를 실수하게 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과 의사로 30년간 환자들을 진료한 대니엘 오프리 뉴욕대 의대 교수는 신간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에서 의료계 내부자로서 그동안 의료 사고의 실체를 추적한다. 그는 의료 사고는 의사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복합적 오류와 의료 문화의 한계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라고 진단한다. 저자가 직접 목격한 사망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급성 골수 백혈병 환자 제이와 화상 환자 글렌은 환자의 고통을 우려한 의료진이 제때 골수 생체검사를 하지 않은 탓에, 또 화상센터 대신 중환자실 입원을 택한 당직 의사의 실수로 치료의 적기를 놓쳤다. 잘못된 초기 진단 외에도 간호사의 미온적인 대응, 중환자실로의 이송 지연, 감염 관리 실패 등 각 단계의 오류가 환자 사망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의료 사고의 중심에 ‘10분 진료’, 진단명 오기로 인한 부작용, 피로에 지친 의료진 등 의료진의 오류를 양산하는 현행 의료 시스템이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미국에서 유족들이 의료 소송을 제기하는 데만 5년 이상이 걸린다는 통계가 미국 의료계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EMR(전자 의무 기록) 시스템 개선’, ‘진단 점검 목록 도입’과 함께 의료 소송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