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희생 기억하라”… 스탈린그라드 소환한 푸틴, 왜?

현 볼고그라드 공항→스탈린그라드 공항 개칭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독일군에 대승 거둔 곳
러 국민 사이에 ‘나치’ 겨냥한 증오심 조장 목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과 나치 독일이 말 그대로 ‘혈투’를 벌인 도시 이름 스탈린그라드가 반세기 만에 부활했다. 우크라이나 현 정권을 나치에 비유해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민 사이에 나치를 향한 증오심과 적개심, 그리고 2차대전 승전의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볼고그라드주(州) 주지사로부터 지역 현황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이날 푸틴은 볼고그라드주의 주도 볼고그라드에 있는 국제공항 이름을 ‘스탈린그라드 공항’으로 개칭하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했다. 타스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이날 오후 러시아 남서부 볼가강(江) 서안의 대도시 볼고그라드 공항의 명칭을 ‘스탈린그라드 공항’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했다. 크레믈궁 홈페이지에 게시된 법령은 “1941~1945년 대조국전쟁에서 소련 국민이 거둔 승리를 영원히 기리고자 볼고그라드 국제공항에 역사적 이름 스탈린그라드를 부여한다”고 규정했다. 대조국전쟁이란 2차대전을 일컫는 러시아 명칭이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 스탈린그라드는 50여년 전인 1961년 지금의 볼고그라드로 개칭됐다.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 이웃나라 폴란드를 침략하며 2차대전이 벌어졌을 때 소련은 독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독일이 약속을 깨고 1941년 6월 갑자기 소련을 공격하며 양국은 전쟁에 돌입했다.

 

개전 초반 독일군은 소련군을 연파하고 수도 모스크바 근방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1941년 겨울에 접어들며 독일군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공세를 일시 중단했다. 이듬해인 1942년 봄 독일군이 공격을 재개했으나 한 해 전과 같은 일방적 우위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소련이 전열을 재정비한데다 미국 등 다른 연합국이 소련에 무기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독일군과 시가전을 벌이는 소련군 병사들 옆에서 의무병이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42년 8월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점령에 나섰다. 소련 최고 통치자의 이름을 딴 도시를 빼앗는 것은 상징성이 아주 클 뿐더러 소련 군대와 국민의 사기를 꺾는 효과도 기대됐다. 그때부터 이듬해인 1943년 2월까지 스탈린그라드에선 독일군과 소련군 간에 피비린내 나는 공방이 벌어졌다. 독일군은 40만명, 소련군은 110만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쟁 역사상 단일 전투에서 발생한 인명피해로는 단연 최대 규모로 꼽힌다.

 

소련은 독일보다 훨씬 큰 희생을 치른 끝에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냈다. 독일군은 9만명 넘는 장병이 포로로 잡히며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후 독일군은 소련군을 상대로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1944년 6월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이후 독일은 서부 전선에선 미군과 영국군, 동부 전선에선 소련군에게 협공을 당하며 패색이 짙어졌다. 히틀러자 자살한 직후인 1945년 5월9일 독일군은 수도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에 정식으로 항복했는데, 이를 기념해 러시아는 매년 5월9일을 전승절로 지정하고 열병식 등 성대한 기념 행사를 연다.

 

1942∼1943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에 이긴 것을 기념해 1967년 러시아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 세워진 ‘모국(母國)이 부른다’라는 이름의 승전 기념비. 전체 높이가 무려 87m에 이른다. 위키피디아

오는 5월9일은 제80주년 전승절에 해당한다. 푸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명 스탈린그라드를 소환한 것은 올해 전승절의 각별한 의미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소련이 2차대전에서 나치즘을 물리치고 승리했듯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겼음을 강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간 푸틴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현 우크라이나 정권을 ‘나치 잔당’으로 규정하며 제거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스탈린그라드의 부활은 러시아 국민 사이에 나치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80년 전의 2차대전 승리 뒤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대표되는 소련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2차대전 기간 목숨을 잃은 소련인은 군인과 민간인을 더해 2200만∼25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영국 등 다른 연합국보다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