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작가 “동화라고 예쁜 이야기만 쓸 수 없어… 다양한 현실 담고파”

등단 30주년 동화 작법책 펴낸 황선미

어린이·청소년문학 대표 작가 꼽혀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세계적 인기
미혼모·입양·터전 잃은 소시민까지
무거운 이야기 정면으로 풀어내기도

“‘불편한 소재 왜 쓰나’ 반응도 많아
중요한 건 공감 가능한 설정과 묘사
잘 안 보이는 한국사회 현실에 관심”

1995년 등단해 올해로 작가 생활 30년이 된 황선미(62·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다. 2000년 펴낸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애니메이션·연극 등으로 재탄생하며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1999년 작 ‘나쁜 어린이 표’ 역시 필독서로 꼽히며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등단 30년 차의 황선미 작가는 “동화 쓰기는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집을 짓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그가 선보이는 보편적 감성은 해외 독자들도 매혹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세계 32개국에 번역 출판됐다. 온통 새까맣고 털이 수북해 별나게 생긴 강아지 ‘장발’과 개를 키워 용돈벌이를 하는 노인 ‘목청’씨가 삶의 황혼녘에서 화해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린 ‘푸른 개 장발’은 영국·독일·베트남·스웨덴 등 11개국에서 출간됐다.

황 작가가 더욱 놀라운 건 동화에서 꺼려지던 소재까지 새로운 접근법으로 포용하며 지평을 넓혀 왔다는 점이다. 동화만 쓰다가 2010년 처음 발표한 청소년 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새마을운동 당시 국가 폭력과 개발 논리로 주변부에 밀려난 소시민의 삶을 다룬 책으로, 작가의 유년기 경험이 녹아 있다.

2018년 작 ‘엑시트’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열여덟 소녀 ‘장미’를 중심으로 미혼모·입양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정면으로 풀어냈다. 최근작 ‘찰랑찰랑 비밀 하나’, ‘찰랑찰랑 사랑 하나’ 시리즈에서도 미숙한 10대에 아빠가 된 인물이 나이를 먹으며 성숙해 가고 딸과 유대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황 작가가 동화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정리한 책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문학과지성사)를 이달 출간했다. 이 책은 동화 쓰기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에 걸친 작법을 제시해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넨다.

책에서 작가는 여러 차례 동화에 대한 편견과 금기에 대해 언급한다. 일례로 그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주인공이 죽는 결말에 대해 ‘동화인데 왜 그렇게 끝냈느냐’는 질문을 여전히 받는다. 슬픈 결말보다 해피 엔딩이 동화답다는 통념 탓이다. 소재 면에서도 그렇다. 더럽거나 나쁘거나 위험한 것, 성과 폭력 문제 등의 소재가 과거에 비해 동화 속 표현이 과감해지고 있지만, 동화 소재로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는 제약이 여전하다.

황 작가는 “보호가 필요한 시기를 벗어나면 어린이는 스스로 보고 판단”한다며 “좋은 것, 예쁜 것이 세상 전부인 양 가려 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자는 게 아니다”며 “어떤 방식으로 이 금기들을 알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작법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죽음·상실, 가족 해체 등 어둡거나 슬픈 이야기가 동화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십대 미혼모를 다룬 ‘엑시트’를 썼을 때 ‘불편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쓰나’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동화라고 해서 예쁜 것만 쓸 수는 없다. 고등학생 때 임신·출산을 하는 일이 일어나니 현실을 녹여낼 필요가 있다. 물론 작가와 출판사 모두 어린이의 정서를 대단히 염려하고 고려한다. 어린이가 주 독자이기에 동화는 인도주의적 가치를 중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공감할 만큼의 설정과 묘사로 특정 소재를 다루는 일이다. ‘찰랑찰랑’ 시리즈에서도 십대에 아빠가 된 캐릭터를 사용했지만, 너무 우울하게 만들기 싫었다. 이런 아빠도, 이런 가정의 아이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어른도 아이도 가족으로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며 조금씩 배우는 과정을 강조했다. 내게 미혼부·미혼모와 탈북 청소년 문제는 평생을 안고 갈 주제다.”

―최근 집중하는 다른 주제가 있다면.

“농촌 붕괴를 비롯해 도시에선 잘 안 보이는 대한민국의 다양한 현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전교생이 17명에 불과한 산골 분교에 강연을 간 일이 있다. 70%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인데 부모에게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해 담임선생님이 시내 미장원이나 목욕탕에 데려가는 형편이었다. 폐교 위기인 다른 지역 학교를 강연차 찾았을 땐, 할머니 다섯 분이 늦깎이로 초등학교에 입학해 아이들과 함께 구구단을 외우고 계셨다. 손이 부르트게 농사지어 자식들을 키워냈지만 정작 본인은 글을 모르던 분들이다. 이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 됐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가난하고, 농촌은 붕괴하고, 아이들이 줄어 학교가 문을 닫는다. 동화가 학원에 찌든 도시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보다 다양한 현실을 바라보려 한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그 밖의 조언은.

“지름길도 없고 요행도 없다. 자신의 경험을 몸으로 통과시켜 글을 내보내는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 어렵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기성 작가를 좋아하고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그 그늘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동시에 해야 아류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좋아하는 만큼의 거리감을 유지해야 기성 작가의 영향력에 매몰되거나 흉내를 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어린이·청소년 문학 분야 역시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은 이래 하향세다. 황 작가는 이러한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책이 그다지 중요한 매체가 아닌 세상이 됐고, 유튜브를 비롯해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졌습니다. 시장도, 소비자도 변했고 소비층인 아이들 수도 줄었죠.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골방에 앉아 글에만 정진하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어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작가로 롱런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재능있는 학생들이 하나 둘 강의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볼 때는 비통한 마음입니다.”